글 · 사진 채지영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 속해 있는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고향’이다. 빅이지(Big Easy), 크레센트 시티(Crescent City), 미국의 파리, 딕시랜드, 남부의 헐리우드. 뉴올리언스는 별명도 여러 개다.
재즈는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선 문화와 역사다. 눈물 없이 듣지 못하는 사연들이 숨어 있다. 고향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까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사람들이 없었다면, 재즈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700년대만 해도 뉴올리언스에는 유럽의 클래식 음악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 흑인들의 슬픔이 담긴 음악이 더해졌다. 흑인 음악은 리드미컬했고 여러 명이 즉흥적으로 만들어내는 특징이 있다. 일할 때 노래를 부르던 흑인 문화와 장례식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문화도 섞였다.
재즈가 태어난 데엔 크리올(Creole)의 영향도 컸다. 크리올은 프랑스 사람과 흑인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이들로, 흑인이지만 노예와 다른 지위를 가졌다. 프랑스인 부모는 자녀들을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했다. 크리올은 자연스럽게 유럽의 고전 음악과 흑인의 음악을 자신 안에서 합체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재즈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도 규정할 수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느끼는 수밖에.
뉴올리언스에서 재즈를 만나는 것은 커피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수백 개의 클럽과 공연장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같은 클럽도 요일마다 연주자가 다르다. 연주자가 같아도 연주는 매번 똑같지 않다. 동일한 음악이라면 한 번 들으면 충분하겠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음악이라 여러 번 들어도 신난다. 이것이 뉴올리언스에 있는 동안 매일 저녁 하이에나처럼 재즈를 들으러 돌아다닌 이유다.
재즈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버번 스트리트(Bourbon Street)로 간다. 2차선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정신을 뺏길 정도로 혼란스럽다. 재즈가 아니라 소음만 무성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곳곳에 재즈로 빛나는 바들이 콕콕 박혀 있으니. 발걸음을 한 걸음 안으로 내디뎌 클럽 안으로 들어가 보자. 왜 사람들이 뉴올리언스에 열광하는지 알게 된다.
버번 스트리트가 번잡하다고 느껴진다면, 프렌치멘 스트리트를 찾으면 된다. 오롯이 재즈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거리이기 때문이다. 버번 스트리트보다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재즈를 즐길 수 있다.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이 많으며,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할 수 있는 바들도 있다.
뉴올리언스에서도 ‘재즈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 프리저베이션홀이다. 250년 된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공연장으로, 1960년대부터 매일 밤 재즈 공연이 열리고 있다.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해 쟁쟁한 재즈뮤지션들이 바로 이곳을 거쳤다. 밖에서 보면 건물은 쓰러져 갈 것 같은데, 안에서 즐기는 재즈는 모든 것을 잊게 할 정도로 황홀하다.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첫 번째 자리를 예약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향했다. ‘웬 더 세인츠 고 마칭 인(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을 비롯해 ‘조지아 온 마이 마인드(Georgia on My Mind)’ 등 대표 곡들이 차례로 연주됐다. 흥분한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며, 함께 따라 불렀다. 연주자들 모두 매력적이었지만, 특히 백발의 베이스 연주자의 익살스러운 연주가 블랙홀이었다. 공연 내내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아기를 안은 것처럼 베이스를 안고 세심한 연주를 보여 주는가 하면, 과감하게 긴 베이스의 위아래를 질주하며 폭풍 같은 연주를 안겨 주기도 했다. 공연이 끝나고 찾아가 감동적이었다고 하니, 아이처럼 행복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프리저베이션홀은 8시와 9시, 10시 하루에 세 번 공연을 한다. 첫 번째 자리와 두 번째 자리에 앉고 싶으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지만, 어디든 상관없다면 1시간 전에 가서 줄 서서 들어가면 된다. 공간이 좁아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얼마든지 재즈를 누릴 수 있다.
재즈 클럽에 가지 않고도 재즈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뉴올리언스다. 길을 걷다 멈춰 서서 공연장에서나 볼 법한 멋진 연주를 듣다 보면, ‘아, 맞아. 여기가 뉴올리언스지’라는 생각이 든다. 버번 스트리트에서도 펼쳐지지만 길거리 공연은 골동품 거리인 로열 스트리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버번 스트리트가 시끄럽고 복잡해서, 거리 음악을 감상하기에는 로열 스트리트가 더 적당하다. 단 몇 달러라도 연주자들에게 성의를 표시하는 것을 잊지 말자.
야외에서 재즈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곳은 버번 스트리트의 뮤지컬 레전드 파크(Musical Legend Park)다. 하루 종일 라이브 재즈가 연주된다. 입구에는 재즈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인물상이 있어,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에게 인기다. 무엇보다도 야외에서 편안하게 재즈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 바람이라도 한 줄기 콧등을 스치면,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