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류상만 한국보험신문 기획실장
지난 30여년간 우리나라 보험산업은 GDP와 비슷한 성장곡선을 그려왔다. 경제 고성장기에는 보험산업도 높은 성장률을 나타냈고, 2010년대 이후 경제성장 둔화와 함께 보험산업 역시 성장률이 뚝 떨어졌다. 특히 성장기 보험산업 성장률 수치를 보다보면 GDP대비 2~3배 높은 해도 있어 눈길을 끈다. 2000년대 초 생보시장과 2009년 손보시장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보험산업이 GDP 성장률 대비 2~3배 높은 성장률을 보인 시기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시장을 주도한 혁신적인 상품이 있었다는 것이다. 생보시장의 종신보험과 변액보험, 손보시장의 실손보험이 당시 전체 보험산업 성장률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혁신적 상품이었다.
요즘 국내 보험시장은 포화상태라고 말한다. 전체 국민의 98%가 보험에 가입돼 있고, 가구당 보험가입률도 거의 100%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영업현장에서는 신규 고객 창출이 어려워 이른바 ‘업셀링’을 통해 가까스로 수요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업셀링은 포화상태에 이른 보험시장에서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영업전략으로, 기존 가입자를 대상으로 가입금액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낮춰 새로운 보험상품에 가입하도록 유도하거나 과거 보험가입이 어려웠던 유병자와 고령자를 보험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말한다.
성장기 보험시장은 20~30대 젊은층이 신규 수요의 주력이었으나 저출산 흐름이 이어지면서 젊은층 인구 자체가 줄어든데다 취업난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좀처럼 보험시장 확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장기적인 경제 저성장을 고려할 때 혁신적 간판 상품으로 빠른 시일 내에 폭발적인 판매성장을 유도했던 과거의 상품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작은 부분이지만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위험보장을 찾아내고 기존 보험이 보장하지 못했던 부분을 메우는 상품개발이 필요하다.
이제 신규 보험소비자층이 된 고령소비자를 위한 서비스를 개발해야 할 것이다. 2010년대부터 시장에 등장한 간편심사보험은 그동안 보험상품에 가입할 수 없었던 고령자와 유병자에게 보험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관련 건강나이에 기초해 보험료를 산출하는 건강체 할인 보험상품이 출시되고 있다. 건강나이를 감안한 보험상품은 건강상태에 비해 보험료가 높다고 판단해 보험서비스를 선택하지 않은 소비자와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기존 보험가입에서 제외됐던 소비자 모두에게 보험가입 문호를 넓힌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보험선진국들을 볼 때 국내 보험시장은 여전히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양적인 성장이 아닌 질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공급자가 대량으로 만들어 공급하는 상품이 아닌 그동안 만족시키지 못했던 보험소비자의 니즈를 발견하고 누락되었던 새로운 보장을 세심하게 제공하는 상품, 새로운 기술과 정보를 바탕으로 보험서비스에서 소외되었던 소비자에게 보장을 제공하는 상품, 한 번 판매하고 나면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지속적인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보험상품을 제공한다면 보험시장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슈어테크에 기반을 둔 관련 보험상품 개발이 필요하다. 안전한 운전습관을 자동차보험료에, 규칙적 운동습관을 건강보험료에 반영하는 등 빅데이터를 보험상품에 접목시키는 상품개발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온라인 채널을 통해 판매되는 생활밀착형 소액 간단보험도 우리시회에 필요한 보험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변화에 보험업계가 주도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적극적인 자세와 지원이 필요하다. 과거 특정 보험상품을 개발해 손실이 발생할 경우 상품개발 관계자에게 책임을 물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상품개발자들은 리스크에 대한 책임 때문에 참신한 상품을 만들기 어려웠다. 원래 보험상품은 리스크를 안고 있다. 리스크를 상품개발자 개인이 아닌 보험사가, 더 나아가 사회가 품을 수 있다면 과거와 다른 혁신적 보험상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