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소도시 여행의 인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북적이는 대도시에서 벗어나 한적한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대도시에서 맛보기 힘든 느긋함과 아기자기한 매력, 탐험이 주는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소담한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뜻밖의 풍경,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는 현지인의 인사, 그리고 오랜 시간을 품은 공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행을 깊고 풍성하게 만든다. 해외여행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점점 더 뚜렷하다. 웅장한 랜드마크 중심으로 인증샷만 찍고 가는 여행보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소도시를 산책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빈 일본을 여러 번 여행한 사람이라도 오노미치(尾道)라는 이름을 들어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 ‘자전거’, ‘빈집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면, 오노미치라는 지명을 들어봤을 확률이 높다. 인구 14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오노미치는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곳이다. 사랑스러운 고양이들이 길거리를 유유히 거닐고, 섬과 섬을 잇는 그림 같은 자전거 코스가 펼쳐진 섬이다. 또 빈집 프로젝트와 데님 프로젝트 등을 통해 도시재생에 성공, 도시 기획자들에게는 이미 꽤 알려져 있다. ‘옛것을 지키면서 새로움을 향해 나아간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나는 도시다.
빈 오노미치는 한마디로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항구 도시’다. 구글맵을 켜고 오노미치를 입력하면, 혼슈 서남쪽 주고쿠 지역으로 지도 중심이 이동한다. 주고쿠에서 이정표가 되는 도시는 히로시마로, 오노미치는 히로시마에서 동쪽으로 약 80km 떨어져 있다.
빈 남쪽에는 우리나라 다도해처럼 크고 작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익숙한 다른 일본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안겨준다.
빈 과거 오노미치는 중요한 기항지로서 번성했다. 바쁘게 물자가 오가고 배가 드나들던 항구였다. 그러나 배가 커지면서, 수심이 얕은 오노미치 항구에 들어오는 배가 줄었다. 항구의 기능이 약해지면서, 인구는 감소하고 창고는 하루가 다르게 비었다.
빈 쇠퇴하던 오노미치가 변하기 시작했다. 쓸모가 사라진 공간에 에너지를 넣고, 사람이 떠난 도시를 매만져 사람들의 발길을 돌렸다.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오노미치 U2’다. 과거 해상 운송을 위한 창고였던 이곳은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복합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자전거, 여행 그리고 좋은 물건(Cycle, Travel and Good things)’이라는 슬로건 아래, 호텔, 바이크샵, 레스토랑, 카페, 생활용품 매장이 자리 잡았다. 창고를 개조한 공간인 만큼, 천장이 높아 시원한 느낌을 준다.
빈 이곳에서 판매하는 물건과 음식은 대부분 ‘오노미치산’이다. 식당과 카페에서는 로컬 농장에서 키운 채소를 사용해 음식을 요리하고, 기념품 가게에서는 레몬 문양과 자전거 패턴이 들어간 오노미치만의 특별한 소품을 판매한다.
빈 U2는 자전거 여행자 사이에 명성이 자자하다. 자전거를 점검하고 수리할 수 있는 자이언트 바이크샵이 있고,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커피를 주문할 수 있는 ‘사이클 쓰루’ 야드 카페가 있다. 호텔 객실에는 자전거를 걸어놓을 수 있는 전용 행거가 설치되어 있으며, 곳곳에 자전거 관련 잡지도 비치되어 있다. 자전거 여행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빈 U2가 라이더를 위한 유일무이한 공간이 된 배경에는 ‘세토우치 시마나미 카이도’가 있다. 오노미치에서 출발해 에히메현 이마바리까지 이어지는 약 70km의 자전거 도로는 6개의 섬을 가로지른다. CNN이 선정한 ‘세계 7대 사이클링 코스’ 중 하나로, 일본에서는 ‘자전거 라이더의 성지’로 불릴 정도다.
빈 U2를 둘러본 뒤에는 센코지산으로 향했다. 정상까지는 로프웨이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천천히 내려오는 편이 좋다. 해발 140m로 그리 높지 않지만, 시간을 들여 풍경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빈 로프웨이에서 내리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고양이역장 그림의 종이부채에 기념도장을 남기고 전망대로 향한다. 유려한 곡선으로 이어진 전망대에 오르면, 바다 위에 반짝이는 윤슬과 오랜 세월을 품은 목조 가옥, 바닷가에 정박한 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이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늑하고 따뜻하다.
빈 전망대에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사찰을 지나 ‘고양이 오솔길(猫の細道)’이 나온다. 200m 남짓 이어진 길로, 이곳은 ‘냥집사’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 길에는 소나야마하루라는 화가가 둥근 돌에 빨갛고 노란 색으로 그린 ‘복돌 고양이(福石猫)’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귀여운 복돌 고양이만큼이나 사랑스러운 것은 낡은 벽과 갈라진 바닥 틈에 있는 귀여운 고양이 그림이다. 무심코 지나칠 뻔한 계단도, 고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으면 멈춰 서 바라보게 된다.
빈 이곳에는 진짜 고양이도 많다. 사람들의 발길에 개의치 않고 길 한가운데 대(大자)로 누워 있는 녀석들을 보면, 부러움이 포르르 올라온다. 오노미치를 이야기할 때 고양이가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실제로 히로시마현 관광청은 ‘고양이 시선으로 본 오노미치 거리뷰’ 영상을 제작해 지역을 홍보했고, 고양이 오솔길은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CF에도 등장했다.
빈 오노미치는 한눈에 반할만한 화려한 도시가 아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으며, 그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발견할수록 마음이 더 깊이 물든다. 과거의 흔적을 존중하며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공간들, 자전거와 고양이가 공존하는 골목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온기가 있다. 느리게 걸을수록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곳,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는 여행지. 오노미치는 그런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