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천성 여행
빈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물러가고 드디어 가을이다. 여행하기 좋은 가을, 아름다운 물색을 찾아 중국 사천성(四川省)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황홀한 구채구의 호수를 감상하고 귀여운 판다를 만난후, 매콤한 사천음식까지 맛보면, 만족스러운 가을 여행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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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남쪽에 있는 사천성은 ‘천부(天府)지국’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천부지국은 ‘땅이 기름져 온갖 산물이 나는 나라’라는 뜻으로, 사천성은 살기 좋은 고장으로 이름이 높다. 사천성의 성도인 청두는 14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로 선정될 정도다. 또한 청두는 삼국시대 촉나라로, 삼국지를 따라 여행하는 이들의 필수 여행지다.
수많은 사천성 여행지 중, 눈길을 끄는 곳은 구채구(九寨溝)다. ‘9개의 티벳 마을이 있는 계곡’이란 뜻의 구채구는 중국인들도 가장 여행하고 싶은 곳으로 손꼽는 지역이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구채구는 천혜의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계절 모두 다른 매력을 뽐내지만, 울긋불긋 빛 고운 단풍이 호수 주변을 뒤덮는 가을을 최고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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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구의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개방된 구간에만 114개의 호수와 17개의 폭포가 있다. 개인 차량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고, 구채구 입장 후에는 셔틀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걸어서 다닐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다.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구채구의 길은 Y자형으로, 일반적으로 오전에 한쪽을 보고 가운데 모이는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에 다른 쪽을 보는 일정으로 여행한다.
구채구를 대표하는 풍경은 오묘한 빛깔의 호수다. 높고 깊은 산 속에 있는 호수는 하늘과 짝을 이뤄 천상의 풍광을 안겨준다. 구채구에서는 호수를 바다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경해, 오화해, 죽순해, 공작해 등 호수 이름 뒤에 ‘해(海)’가 붙는다. 호수마다 개성이 넘친다. 100개가 넘는 호수 중 물색이 작품인 오채지와 함께 꼭 들러야하는 호수는 장해다. 구채구 호수 중 가장 큰 장해 앞에 서면 어디선가 도인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면, 크고 작은 인간사가 한낱 종잇장처럼 느껴진다. 해발 3010m에 수심이 40m에 달하는 장해. 웅장함과 섬세함에 반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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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도 빠질 수 없다. 낭만적인 낙일랑 폭포와 함께 진주탄 폭포가 인상적이다. 물이 옥구슬처럼 올망졸망 내려오더니, 계곡 아래로 거침없이 떨어진다. 낙차가 40m나 달해 물살이 거세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우렁차다. 죽비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폭포를 오른 편에 두고 데크를 따라 산책할 수 있는데, 신선이라도 된 기분이다. 구채구는 사진으로, 영상으로 여러 번 보고 가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 물빛과 분위기를 안겨준다.
구채구는 지진 때문에 2017년부터 2년간 문을 닫았다. 새롭게 단장해 오픈했지만, 코로나로 다시 혹독한 시기를 견뎌야했다. 그동안 인프라도 개선하고 숙소도 정비했다. 힐튼 가든인호텔과 콘래드 호텔 등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나고 티벳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과 체험장도 확충했다. ‘천고정(天古情)’처럼 저녁에 볼만한 공연도 펼쳐지는 등 역동적인 에너지가 구채구 곳곳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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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은 판다로도 유명하다. 용인 에버랜드에 이은 푸바오의 두 번째 집 워룽 선수핑기지(臥龍神樹坪基地)를 비롯해, 5개의 판다 연구기지가 있다. 판다를 만나기 위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은 청두 시내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청두판다연구기지(成都大熊貓繁育研究基地)다. 매해 50만명 이상 방문하는 인기 관광지로, 넓은 방사장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즐기는 판다를 어렵지 않게 만난다. 먼 산을 바라보거나, 양 손에 대나무를 쥐고 먹기에 심취해 있거나, 어슬렁어슬렁 걷는 판다. 판다의 단순한 몸짓과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진초록을 띠는 대나무 숲은 판다를 만나러 가는 설렘을 더한다. 청두판다연구기지에서 인기 있는 구역은 아기 판다를 보는 곳이다. 앙증맞은 판다가 엉금엉금 움직이거나, 나무에 오르려고 애쓰는 모습은 사람과 흡사하다. 아이돌 스타의 공연을 기다리듯 수많은 이들이 아기 판다를 보기 위해 공연장에서 대기한다. 아기 판다가 움직이면 여기저기에서 ‘귀여워’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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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게 맛이다. 중국 4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 사천요리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사천 음식이 맛있는 데는 자연적인 배경이 있다. 사천(四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민강과 장강, 타강, 자링강 등 4개의 강을 끼고 있어, 땅이 비옥하다. 연중 내내 습한 날씨 때문에, 예로부터 매운 맛을 선호했다. 매운 음식을 섭취해, 몸의 습기를 빼내야 건강에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다른 지방과 비교해 향신료를 많이 쓰는 편이며, 톡 쏘면서 얼얼한 마라(麻辣) 맛이 특징이다.
마라탕과 훠궈, 탄탄면 등 다양한 사천음식 중에서도 마파두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마파두부는 기름장수가 남긴 기름에 두부와 고기를 볶아 만든 음식으로, 마파두부를 만들던 노파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어 곰보를 뜻하는 ‘마’를 넣은 마파두부라는 이름을 얻었다.
원조 마파두부를 맛보고 나니, ‘명불허전’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뚝배기 안에 보들보들한 두부, 식감 좋은 고기, 그리고 매운 맛의 신세계를 열어주는 두반장과 소스가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소스를 섞은 두부를 한 숟가락 입에 넣었는데, 마치 안에서 폭죽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소스에 산초와 생강, 고춧가루 등 수 십 가지 맛이 숨어 있었다. 작은 뚝배기 안에 종합예술이 펼쳐져 있다고나 할까. 황홀한 자연에 취하고 귀여운 판다를 만난 후 맛 본 마파두부. 가을 사천성 여행의 화룡점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