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승훈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 공학박사
생존 기간 중 호흡을 통해 체내로 흡수된 화재 초기의 현장상황은 사망과 동시에 대사활동의 정지로 인하여 신체가 완전히 소실되거나 부패되지 않는 이상 흡입 당시의 상태로 체내에 보존될 수 있다. 시너, 휘발유, 등유 등 인화성 석유류 연소촉진제는 대기 중에 노출되었을 때 상온에서 휘발하여 유증을 발생시킨다.
현장에 있던 피해자는 연소촉진제가 살포된 후 착화되기 전까지 또는 사망 전까지 대기를 호흡하며 동시에 현장의 석유류 물질을 흡수하게 된다. 현장에 뿌려진 석유류 연소촉진제는 화재와 더불어 완전히 소실되는 경우가 많아 그 존재여부를 밝히기 어렵지만 인체가 완전히 소실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으므로 부검 시 이러한 물질을 확인할 수 있다면 화재사건 재구성에 있어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화재 피해자의 혈액으로부터 생존 당시 석유류 물질이 뿌려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논지의 연구 논문
을 소개하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현재 망자 혈액의 석유류 검사를 수행하고 있지 않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가능하다면 감식 및 수사 분야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에 의하면 기도에서 그을음(매)가 검출되지 않거나 혈중 일산화탄소 농도가 흡연자 수준으로 매우 낮은 경우(화재로 인한 사망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에도 석유류 성분이 검출되었고 그리고, 프로판 가스 폭발 현장의 망자 혈액에서도 가스의 성분이 검출되어 가스 누출에 의한 폭발 사고, 기타 중독사고의 조사에서도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 연구에서 기도에서 그을음이 검출되지 않거나 혈중 일산화탄소가 매우 낮은 경우에도 혈액에서 석유류 성분을 검출했던 결과는 흥미롭다. 그을음이나 혈중 일산화탄소는 화재 이후 사망하였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한 중요한 증거이다. 그러나 신체에 석유류 물질을 끼얹고 화재가 발생하거나, 매우 가까운 곳에서 화염이 발생한 것과 같이 급격하고 강력한 화염이 인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심장성 쇼크사, 호흡성 쇼크사의 경우는 화재가 발생한 직후 바로 사망하거나 부종에 의해 기도가 막히기 때문에 화재의 연소생성물들을 호흡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 부검 시 기도의 그을음과 혈중 일산화탄소와 같은 중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석유류 액체가연물을 뿌리고 방화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연소생성물인 일산화탄소와 그을음을 호흡하는 시간보다는 석유류 물질을 호흡하는 시간이 더욱 길기 때문에 혈액 내 석유류 물질은 망자의 사망원인 및 화재원인을 밝히는데 더욱 가치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은 강력한 화염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쇼크로 사망하거나 기도부종으로 호흡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망자의 기도에서 그을음이나 혈중 일산화탄소가 검출되지 않더라도 혈중 석유류 물질 검사 결과를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논문의 내용 일부를 정리하였다.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원문을 검색해 확인하기 바란다.
Iwasaki, Yasumasa(1997) 등은 화재 사망자 73명의 혈액에 대한 GC-MS 검사를 통해서 생존당시 석유류 물질이 화재에 관여되었는지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석유류 인화성 액체가연물이 뿌려진 후 화재가 발생한 피해자 26명의 혈액 검사 중 16명의 혈액에서 석유류 성분을 검출하였고, 이미 죽은 후 액체가연물이 뿌려지고 화재가 발생하였던 피해자 7명에게는 기도에서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았고, 혈중 COHb(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 농도 또한 보통의 흡연자보다 낮게 나타났고, 혈액에서 석유류 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 석유류 액체가연물이 살포된 후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었던 현장의 사망자 34명 중 9명의 혈액에서 석유류 성분이 검출되었다.
연구자는 이를 통해 석유류 연소 촉진제의 사용이 의심되는 화재의 잔해에서 발견 된 망자의 기도에서 육안으로 그을음을 확인할 수 없거나 혈액의 COHb 농도가 흡연자보다 높지 않은 경우에도 혈액의 GC-MS 검사를 통해 사망 원인과 석유류 인화성 물질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 연구에 활용된 사례 및 방법
1985년 12월부터 1995년 12월까지 히로시마대학교 의과대학 법학과에서는 화재 발생 후 잔해에서 발견된 143건의 사체를 검사했다. 경찰의 정보에 따르면, 143명의 시체 중 73명에서 화재가 시작될 때 촉진제가 관여(37건)된 것을 확인한 것과 의심(36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73건이 연구에 사용되었다. 촉진제가 관여하지 않았다고 의심되는 나머지 70건의 사례는 연구에서 제외되었다. 이 연구는 4세에서 90세(평균 48 세)의 연령대에 있는 남성 36명과 여성 37명으로 구성되었다. 부검에서 좌심실, 우심실, 대동맥 및 골반 혈관으로부터 혈액 샘플을 채취했으며 혼합된 좌우 심장 혈액도 채취되었다. 폐 또는 뇌와 같은 조직 표본은 검사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는 모발 및 의복 샘플도 수집하였다.
분석 사례들의 검사는 부검 시 수집한 혈액 샘플의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 또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피 - 질량 분석(GC-MS)으로 분석하고, COHb 농도를 분광 광도계 및 GC를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일부 사례에서 시체의 머리카락과 옷에서 대하여 연소촉진제 분석이 수행되었으며 경찰 기록의 정보도 사용되다.
· 연구의 결과
73건의 사례는 2개의 그룹으로 나누었다. 석유류 액체가연물이 관여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사례 37건은 그룹1이며 관여된 것으로 의심되는 36건은 그룹2로 구분되었다.
그룹1은 또 다시 두 개의 그룹으로 구분하였다. 기도에서 그을음이 관찰되거나 COHb 농도가 10%를 초과하는 26건은 그룹 1-1로 구분하였고, 기도에서 그을음이 검출되지 않고 COHb 농도가 10 % 이하인 11 건은 그룹 1-2로 구분하였다.
그룹2도 또 다시 두 개의 그룹으로 구분하였다. 기도에서 그을음이 확실하게 확인되었거나 COHb 농도가 10 %를 초과하는 34 건의 사례는 그룹 2-1로 구분하였고, 기도의 그을음이 검출되지 않고 COHb 농도가 10 % 이하인 2 건은 그룹 2-2로 구분하였다.
그룹 1 (관여 확인) | 그룹 1-1 | 기도 그을음 관찰, COHb 농도가 10% 초과 |
---|---|---|
그룹 1-2 | 기도 그을음 불관찰, COHb 농도가 10% 이하 | |
그룹 2 (관여 의심) | 그룹 2-1 | 기도 그을음 관찰, COHb 농도가 10% 초과 |
그룹 2-2 | 기도 그을음 불관찰, COHb 농도가 10% 이하 |
그룹별 검사결과를 나타낸 다음의 <표 2>에서 프로판 가스 폭발 현장, 페인트 시너, 등유, 가솔린 등 다양한 석유류 물질이 관여된 화재 현장 사망자들의 혈액에서 석유류 물질을 검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혈액에서 촉진제가 검출되지 않은 8간 중 2건의 의복 또는 모발에서 연소촉진제 분석을 수행하였으며 2개의 사건 인화성 물질이 모두 검출되었다.
혈액에서 연소촉진제가 검출되지 않은 사건 25건 중 9건의 의복을 분석하였을 때 2개의 사건에서 연소촉진제가 검출되었다.
본 연구의 방법 등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논문을 통해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