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최창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
보험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사고 방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보험의 사고 방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발생하는 대형 사고를 반복해서 목격하고 있다. 이상적인 경우(특히 외국의 경우) 정부가 리스크를 수반하는 사업자에게 보험 가입의 의무화하고(미국의 경우 의무보험이 거의 없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업 소유주가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보험회사가 보험 인수를 거부하여 리스크가 큰 사업자가 경제활동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하여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험의 사고 방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은 크게 보험회사가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부재와 모호한 리스크 관리 책임에 대한 정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고의 경우 선주가 배를 불법으로 개조하고 평형수를 빼내서 배에 가항능력이 없었음에도 무리하게 운행을 하여 사고가 발생하였다. 저자는 보험회사가 배의 불법 개조 및 가항능력 부재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충분하였다면 세월호 사고가 방지될 수도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리스크 관리 책임 부분에 대해서도 모호한 부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구 서문시장의 경우 2005년, 2014년, 2016년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대구 서문시장 화재 당시 업계 전문가들은 소방시설, 전기 설비, 전열기 사용 등이 소방법에 따라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아 화재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이러한 물건에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지적했다. 대구 서문시장의 경우 화재 리스크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가 이를 인수하였고 결국 이는 보험회사는 화재 사고에 대하여 보험금을 지급하였다. 2017년 당시 국회에서 관련논의가 있었는데 전통시장에 대해서 정책성 보험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을 뿐 전통 시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화재가 시장이 소방법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하는 것(구체적으로 화재가 누구의 책임인가?)이라는 부분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험은 보험목적물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현행법에 따라 안전 관리를 철저히 수행한다는가정 하에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손해를 보상하기 위한 것이므로 현행 소방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물건은 보험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보험이 제대로 사고방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험회사가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와 화재 리스크 관리 책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부족할 경우 보험은 사고 방지 기능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빈번한 사고는 보험자의 보험 인수 의지를 꺾어 시장의 실패를 야기할 수 있다.
저자는 최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형 창고 화재사고에서 보험이 사고방지 기능을 못하는 이유가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보험회사가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부재와 창고화재 책임에 대한 명확한 정의의 부재)인 것으로 보고 있다. 본고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 최근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형 창고 화재 사고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제안한다.
최근 수년간 발생한 대형 창고 화재에는 쿠팡 물류센터 화재(2021. 6. 18.), 광주 나라유통 화재(2021. 7.17.), 군포 물류창고 화재(2020. 4. 21.), 이천 한익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2020. 4. 29)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연속적인 대형 창고 화재는 보험회사와 재보험회사가 보험요율을 급격히 인상하도록 하고 더 나아가 일부 물건에 대하여 보험 인수를 거부하도록 하여 관련 시장에서 시장실패가 발생하도록 할 수 있다. 관련 시장에서 시장실패가 발생할 경우 대형 창고들은 리스크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에서 영업을 수행하여야 한다.([그림 1] 참조)
현재 해외 재보험회사들은 우리나라의 대형 창고 물건을 불량물건으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쿠팡 물류창고 화재가 발생한 이천시의 경우 일부 물류창고에 대하여 보험회사들이 인수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가. 미국 사례
미국의 제도 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미국의 경우 ① 스프링클러 설치, ② 스프링클러 관리, ③ 소방 점검(우리나라도 소방서에 의한 점검은 의무사항임)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뉴욕 소방법(Fire Code)은 제32장 대형창고(HIGH-PILED COMBUSTIBLE STORAGE)의 제3207조(Section3207) 선반식 대형 창고와 제3208조(Section 3208) 래크식 대형 창고에서 각각에 대하여 자동 스프링클러(테이블 3206.2) 또는 1시간 동안 유지될 수 있는 방화벽(건축법 §707)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뉴욕주의 소방법은 제901조 4항에서 소방시설의 설치 및 관리에 대하여 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제901조 4항은 소방 시설이 설치 표준을 준수하도록 관리되어야 하고, 건물의 수정, 리모델, 확장 등에 따른 표준에 따라 이에 맞도록 소방 시스템이 확장, 변경 또는 추가되어야하고 소방 시설이 소방법을 준수하도록 설치, 수리, 운영, 테스트 및 관리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뉴욕 주의 경우 대형 창고 소유자는 스프링클러 및 다른 소방설비를 설치하여야 하고 이들을 소방법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
[그림 2]는 미국 뉴욕주의 대형 창고 화재 리스크 관리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대형 창고 소유자는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소방법에 따라 화재 리스크를 관리하여야 한다. 창고 소유주는 소방시설의 점검 및 관리와 관련하여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소방시설의 설치, 검사, 보수 등을 전문 업체에 위탁한다. 보험회사는 창고 소유주가 소방법에 따라 화재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보험 증권을 발행하고 소유주는 이를 주 정부에 제시하여 경제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된다.
미국에서 보험을 통한 대형 창고화재 방지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게 되는 이유는 미국이 창고 화재와 관련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3]은 창고 화재 관련 법적 주체의 책임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창고 소유자는 소방법에 따라 화재 리스크를 관리하여야 하는 법적 책임을 가진다. 소방시설의 시공자, 검사자, 보수자 등의 경우 자신이 맡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경우 화재 사고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스프링클러 회사는 스프링클러에 결함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다. 보험회사는 대형 창고 소유자가 소방설비를 법에 따라 제대로 관리하고 있는지 여부와 창고의 화재 리스크 수준을 고려하여 보험을 인수할 것인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여 리스크가 큰 보험을 인수하게 되는 경우 보험회사는 관련 화재에 대한 손해를 보험금으로 보상하여야 한다.
미국의 경우 특히 주의해서 보아야 할 점은 창고 소유주에 대한 책임 강조이다. 미국 소방법은 창고 소유자의 관리책임을 강조하고 있고, 창고 소유자들은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미국 각 주는 창고 소유자의 관리 책임을 강조하여 대형 창고 화재 사고를 방지하고 있다나. 우리나라 현황
대형 창고 화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의 문제점은 [그림 4]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스프링클러의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스프링클러가 빠른 시간에 내에 자동으로 화재를 진압하는데 핵심적임 장치임에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이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다만, 최근 정부가 창고 화재 리스크 관리 방안에서 스프링클러의 설치를 의무화하여 이 부분은 향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문제는 보험 가입의 의무화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의 각 주 보험업법에 보험 가입이 의무화된 부분(compulsory insurance)이 많지 않아 미국에 의무보험이 많지 않은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미국의 경우 대부분 주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자에게 영업을 허가해주지 않으므로 실제로 사업주가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영업을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대형 창고에 화재보험 가입의 의무화되어있지 않아 일부 창고들이 화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로 영업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형창고의 관리에 대한 제반 사항을 정하고 있는 물류시설법은 제52조 8항에서 특히, 소방시설법 및 소방시설공사업법 등에 따라 소방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나 영업허가를 위한 보험 가입에 대한 내용은 정하고 있지않다.세 번째 문제는 책임 소지에 관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업자가 소방법에 따라 화재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이를 위반할 시, 사업자는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였으나 이에 대한 관리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보험금과 관련하여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정부나 법원은 대부분 피보험자에게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보험금이 제대로 지급되도록 하는 것은 정부와 법원의 책무일 수 있다. 다만, 피보험자가 법에 정해진 바에 따라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에도 보험금 지급이 강제된다면 이는 피보험자의 리스크 관리 동기 유인을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보험이 사고를 방지하는 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도록 하거나 보험에서의 시장실패를 야기할 수 도 있다. 따라서 보험이 사고방지 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피보험자의 책임이 어느 정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 문제점은 대형 창고화재와 관련하여 보험회사가 언더라이팅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미국에서는 사업자가 주기적으로 소방점검을 받아야 하는 의무와 소방장비 관리 의무를 가지고 있다. 창고 소유자는 소방 점검 결과와 소방장비 검사 결과를 보험회사에 제공하고 보험회사는 제공받은 문서와 현장 점검을 토대로 보험료 산출 및 보험 인수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소방서에서 진행하는 조사 결과만으로 대형 창고의 화재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언더라이팅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다만, 최근 특수건물의 기준을 완화하여 더 많은 창고를 특수건물로 분류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더 많은 창고가 특수건물로 지정될 경우 리스크 평가가 강화되어 보험회사의 언더라이팅이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나라들은 안전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안전사고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부과되는 책임에 모호한 점이 있는지 또는 법적 책임의 수준이 적절한지를 살펴보고 관련 제도를 개선하여 안전사고의 재발을 막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자전거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법원이 손해배상 책임 수준을 크게 높여 자전거 사고 건수를 크게 감소시켰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책임을 강화하거나 책임 소지를 분명하게 정하기보다 다른 방법(예를 들어 매뉴얼 강화, 소방설비 설치 의무화 등)을 통하여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하여 왔으나 책임의 강화 이외의 방법은 사람들이 행동을 바꾸도록 강제하지 않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창고 화재의 경우 최근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으나 창고 소유주의 관리 책임을 확실히 하지 않을 경우 그 효과가 감소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였다 하더라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창고의 물건이 젖을 것을 걱정하여 관리자가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수정할 경우 창고 화재가 반복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창고의 화재 리스크를 가장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창고를 관리하는 사람이다. 만일 창고 관리자의 화재 리스크 관리 책임 강화에 대한 고려 없이 이루어지는 제도개선은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따라서 창고 화재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에서 미국의 사례를 고려하여 창고 소유자 및 관리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부분이 함께 고려되어야 반복되는 창고 화재가 효과적으로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