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여 년 전의 일이다. 여럿이 지하 노래방엘 들어갔는데 앉자마자 정전이 됐다. 주인은 금방 전기가 들어올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불과 1~2분 지났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안한 마음이 슬슬 일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차! 이러다 불이라도 나면 모두 타죽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방 저 방에서 나온 사람들이 입구라고 여기는 쪽으로 몰려갔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전기가 들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구와는 전혀 엉뚱한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불이나면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야지 하고 다들 생각은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면 소용이 없다. 전기가 나가서 깜깜하니 출구를 못 찾는데다 연기까지 덮치니 허둥대다 화를 당하게 된다. 그래서 매뉴얼이 필요하고 그 매뉴얼이 무의식중에도 행동으로 옮겨지도록 평소 훈련을 해둬야 한다. 지진과 화재와 태풍이 많은 일본에서 매뉴얼이 발달한 이유다.
도쿄특파원 시절에 겪은 강렬한 경험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출근직전에 꽤 큰 규모의 지진을 만났다. 천정에 매달린 전등이 마구 흔들리고 선반 위의 물건이 굴러 떨어졌다.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새 애들은 재빨리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언제 꺼냈는지 두툼한 누비 모자도 쓰고 있었다. 그 민첩성과 준비된 행동이 놀라웠다. 위에서 낙하하는 물건에 머리와 몸을 보호하도록 학교에서 그렇게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재임 중 일본의 초등교육 과정을 지켜보면서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은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초를 철저한 커리큘럼을 통해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한국인학교가 아닌 일본학교에 보냈는데 민간의 접촉면이 넓어져야 양국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저런 경험을 토대로 나는 ‘사건사고 왕국’이 되어버린 이 나라에 살면서 몇 가지 수칙을 갖고 있다. 우선 불가피하게 지하식당을 이용할 땐 비상구 위치를 눈여겨 봐둔다. 자동차 조수석 글로브 박스엔 플래시, 망치, 수건과 함께 생수를 한 병 넣어둔다. 망치는 물에 빠질 경우 유리를 깨고 나오기 위한 것이고, 생수는 터널화재 같은 때 수건에 물을 적셔서 코에 대고 숨을 쉬기 위한 것이다. 콘솔박스엔 문구용 커터가 들어 있다. 비상시 안전벨트를 자르기 위해서다. 갖가지 유형의 사고를 목격하면서 완벽하진 않지만 이처럼 자그마한 준비가 생사를 가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큰불이 났지만 화재경보기와 소화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마감재가 샌드위치 패널이라 불이 번지기 쉬웠다. 건축자재에 문제가 있었지만 주무관청은 세세히 살피지도 않고 허가를 내줬다. 유치원생을 포함, 2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사고에 책임 있는 사람들은 끽해야 징역 몇 년에 벌금 수 백 만원, 아니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999년 6월 씨랜드 참사관련 기사내용이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화재 현장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고 화재감지기가 고장 나있다. 외부로 통하는 문은 쌓아놓은 물건들로 막혀 있기 일쑤고 불량자재가 화재를 키운다. 인허가 관청의 허술한 일처리와 심지어 소방차의 늑장출동 의혹까지. 한 치도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재난의 폭과 깊이는 더 넓고 깊어졌다. 짓고 있는 아파트가 붕괴되고 대형선박이 침몰하기도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이 나거나 폭발하고 그때마다 인명이 희생된다. 항간에서 말하듯 정말 대통령이 덕이 없어서 그런 걸까? 그게 사실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선거 때마다 덕 없는 대통령만 뽑는 걸까? 이 기간 우리가 이룬 경제적 성과엔 세계가 놀라워한다. 음악 미술 스포츠 쪽의 비약적 발전에도 세계가 경탄하고 있다. 치안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복지수준 또한 선진국에 근접했다. 그런데 왜 유독 사회 안전에 관한 발전은 제자리걸음일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압축 성장’ 과정에 차근차근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점과 처벌의 실종이다. 한국의 압축성장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선진국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성과를, 사람의 한 생애 기간에 다 이루다시피 했으니까.
그러나 공짜는 없다. 우리보다 일찍 문리가 트인 미국 유럽 같은 나라가 그 오랜 시간 걸려 이룩한 걸 우리가 초단기간에 달성했다면 반드시 부(負)의 흔적이 남을 것이다. 나무의 나이테가 고스란히 성장이력을 담고 있는 것처럼. ‘압축’은 좀 거칠게 표현하면 한정된 공간이나 시간 안에 강제로 구겨 넣는 것이다. 원형이 왜곡되거나 핵심가치가 상실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과도한 성과주의 기치아래 ‘빨리빨리’ ‘건성건성’ 일을 해치우는 게 그런 증상이다. 건물공사 때 시멘트가 양성될 시간도 주지 않고 위층을 올린다든지, 설계 원안을 무시하고 철근을 듬성듬성 넣는다든지, 내구성이 떨어지는 후진국 H빔으로 대체함으로써 부실의 단초를 제공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씨랜드 참사이후 오늘날까지도 유사한 사건사고가 계속되는 건 이런 못된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서다. 자신들이 짓는 건축물을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천한 생각 때문이다. 이런 기업인의 머릿속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되어도 불안한 사회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결과물은 생각의 경로를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사법당국의 미지근한 처벌도 우리사회의 부실화에 일조하고 있다. 탐욕을 벌하긴 어렵다. 하지만 탐욕에서 발원한 부정과 부패는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다. 그러한 응징이 국가 전반으로 확산되어 사회구성원들이 범죄에 접근할 엄두조차 못 내게 하는 것이 사법의 효과다. 도처에 유형무형의 범죄가 활개를 치는 것은 뜨뜻미지근한 징벌이 오히려 범죄를 부추기는 효과를 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오늘날처럼 범죄로 만연한 적은 없었다. 스토킹 범죄나 데이트폭력 및 살인, 교내폭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건 법원의 처벌수위를 얕잡아보고 이를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결과라고 본다. 좀 다른 경우지만 가짜뉴스 유포 또한 도를 넘고 있지만 처벌은 없다시피 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법 시스템에 대해 국민들은 우려와 공분을 넘어 절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사회 전반, 구석구석에 이미 병이 깊다. 사법부의 처벌만으로 해결을 기대하기는 난망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전 국민적인 운동, 이를테면 ‘품격 있는 자본주의’ ‘품격 있는 대한민국’ 같은 캠페인을 전개해볼만하다. 이를 통해 오랜 시간 왜곡되고 뒤틀린 우리의 ‘바탕생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 아울러 지금은 실종되고 없지만 우리의 원래 심성인 ‘선한 한국인’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화재보험협회를 세계 최고의 위험관리전문기관으로 키우겠다는 강영구 이사장의 포부에 기대가 크다. 기왕에 나선다면 눈에 보이는 위험관리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심성을 위험에서 구하는 대한민국의 컨트롤타워가 되겠다는 더 큰 포부를 가져보기 바란다. 버거우면 정부나 민간단체와 손을 잡고 펼쳐나가는 것도 좋을 듯 싶다. 完.